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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향토사연구회 이용길 회장의 안내로 세성산전투기념비를 참배하는 동대해문화연구소 답사단.
세성산전투기념비 해마다 위령제를 올린다.
천안박물관 전시중 동경대전 계미중춘판 진본.
김상조 역사문화답사가
충남 천안 목천이 동학 포덕 중심지로 떠오른 것은 동경대전 목천판 간행 덕분이다. 목천판은 해월 최시형의 지시로 대접주 김은경의 집(천안시 동면 죽계리 450)에서 간행한다. 김은경은 해월이 단양에 피신해 머무를 때 찾아간 인물이었다. 그는 해월에게 수도 절차를 묻고 도를 전수받는다. 목천에서 그는 모두 100부를 찍는다. 그리고 30부를 해월에게 보내고 나머지 70부는 충청지역 접주들에게 나눠준다. 동경대전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지은 동학 최초의 경전이다. 초판은 해월이 피신 중이던 1880년 강원 인제 남면 갑둔리 도인 김현수의 집에서 간행한다. 모두 100부를 간행했다고 하지만 현재 초간본은 독립기념관, 중앙도서관, 개인 소장 등 3권만 전해진다. 해월과 김은경이 초간본을 3년 후인 1883년 봄 수정 보완해 목활자로 재간행한 것이다. 이 덕분에 동학은 충청, 경기, 강원 등지로 들불처럼 전파된다.
계미중춘판 동경대전은 현존하는 동경대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그런데 갑오농민전쟁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2021년 4월 목천에서 진본이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한다. 접주 김은경이 간행 직후 따로 숨겨두었던 경전이었다. 이중 항아리에 넣어 자신의 집 장독대에 파묻어 두었던 것이다. 집주소는 현재 충남 천안군 동면 죽계리 450번지다. 그는 자식들에게 늘 "항아리를 열면 너희에게 큰 해가 닥치니 좋은 세상이 되면 열어 보아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이에 집안에서도 개봉을 금기시해온다. 그 후 1993년 후손 김찬암 선생이 마침내 장독대를 파보게 된다. 그는 동학도인이자 천안지역에서 소문난 명리학자였다. 파낸 항아리 안에는 동경대전 계미중춘판 진본과 함께 용담유사 필사본, 대한제국 역사교과서 동국역사 등이 함께 발견된다.
진본 발견 소문은 2000년대 동학연구자들 사이에만 나돌았다. 하지만 후손들이 공개를 꺼려 실물 확인은 어려웠다. 그러나 천안의 뜻있는 인사들은 설득하며 끊임없이 공개를 종용한다. 진본은 발견 20여년 만인 2021년 4월 마침내 드러난다. 김찬암 선생의 손자 김진관씨가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기탁키로 한 것이다. 진본은 공주박물관을 거쳐 현재 천안박물관 2층에 전시돼 있다. 동경대전은 지금까지 1880년 인제 갑둔리 간행 경진판, 2021년 세상에 드러난 1883년 목천 간행 계미중춘판, 계미중하판, 그리고 1888년(고종25년) 무진판이 있다.
천안 목천에 해월 최시형의 기포령이 전해진 것은 9월말이었다. 동학농민군은 접주 김복용과 이희인의 지휘 하에 천안 세성산으로 집결한다. 산자락에 백제시대 작물과 농기구를 비치하던 농성이 자리한 산이다. 높이는 200여m에 불과하지만 북동쪽이 지대가 높다. 수비가 쉽고 공략이 어려운 지형이다. 삼남지방 동학농민군은 한양 진격을 위해 공주, 홍주 등지를 사전 공략키로 한다. 세성산은 이에 앞선 교두보격이 된 것이다. 당시 세성산은 전략상 가장 북쪽 전선에 해당한다. 이곳에는 기포 직전 이미 천안, 전의, 전동 등지 관아에서 빼앗은 무기와 식량이 대량 비축된다. 산 둘레 10km에는 깃발 수백기를 꽂아 위력을 과시한다.
조정이 동학농민군 토벌에 나선 것은 9월 중순이었다. 당시 일본군이 내세운 김홍집 친일내각은 토벌부대 양호순무영을 설치한다. 관군은 친군경리청, 친군장위, 친군통위영, 교도대 등 2414명이었다. 이들을 지휘한 인물이 선봉장 이규태와 후일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다는 이두황이다. 이들중 이두황이 이끄는 장위영군은 청주병영 사수명령을 받는다. 청주병영은 접주 손천민이 이끄는 공격에 다급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병영에 닿자마자 더 다급한 공주 충청감영 사수명령이 내려진다. 이두황은 재차 남진 전 해월 최시형이 머무는 보은 장내리 대도소를 노린다. 그러나 해월은 옥천 문바위로 피신한 뒤였다. 초막 400여 채만 불태운 관군은 말머리를 세성산으로 돌린다. 이 산에는 천안뿐만 아니라 인근 공주, 옥천, 영동, 예산 등지 동학농민군도 합세했다. 이에 그 수는 무려 4000여명에 이른다는 기록도 있다. 전봉준이 이끄는 남접 동학농민군은 한양 공격이 주목표였다. 이에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막고 함께 북진을 기다렸던 요충지 세성산을 관군은 사전 제압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 공주로 향했다가는 배후공격이 뻔했던 것이다.
이두황의 장위영군은 10월 21일 아침 일제히 세성산을 공격한다. 수적으로는 세성산 주둔 동학농민군이 서너 배 우위였다. 하지만 소총과 대포로 중무장하고 잘 훈련된 경군과는 전력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군사들은 맞은편 먼저 산에서 지원사격을 가한다. 일부 군사들은 북쪽 절벽아래 매복한다. 나머지 군사들은 완만한 동남쪽을 뚫고 산위로 들어간다. 동학농민군은 낭떠러지 삼면을 방어벽으로 삼는다. 그러나 막강한 화력에 결국 수많은 사상자만 내고만다. 이들은 북동쪽 10km가량 떨어진 작성산으로 후퇴한다. 그러나 미리 매복해 있던 경군이 이들을 몰살시킨다. 이날 패배로 파악된 동학농민군의 피해는 전사 370여 명, 중경상 770명, 포로 17명이었다고 한다. 전투를 이끈 대접주 김복용 등 지도자 22명도 현장에서 처형당한다. 이두황은 세성산의 무기와 군량을 챙겨 충남감영 사수를 위해 공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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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박물관 전시중 동경대전 계미중춘판 진본.
김상조 역사문화답사가
충남 천안 목천이 동학 포덕 중심지로 떠오른 것은 동경대전 목천판 간행 덕분이다. 목천판은 해월 최시형의 지시로 대접주 김은경의 집(천안시 동면 죽계리 450)에서 간행한다. 김은경은 해월이 단양에 피신해 머무를 때 찾아간 인물이었다. 그는 해월에게 수도 절차를 묻고 도를 전수받는다. 목천에서 그는 모두 100부를 찍는다. 그리고 30부를 해월에게 보내고 나머지 70부는 충청지역 접주들에게 나눠준다. 동경대전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지은 동학 최초의 경전이다. 초판은 해월이 피신 중이던 1880년 강원 인제 남면 갑둔리 도인 김현수의 집에서 간행한다. 모두 100부를 간행했다고 하지만 현재 초간본은 독립기념관, 중앙도서관, 개인 소장 등 3권만 전해진다. 해월과 김은경이 초간본을 3년 후인 1883년 봄 수정 보완해 목활자로 재간행한 것이다. 이 덕분에 동학은 충청, 경기, 강원 등지로 들불처럼 전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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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목천에 해월 최시형의 기포령이 전해진 것은 9월말이었다. 동학농민군은 접주 김복용과 이희인의 지휘 하에 천안 세성산으로 집결한다. 산자락에 백제시대 작물과 농기구를 비치하던 농성이 자리한 산이다. 높이는 200여m에 불과하지만 북동쪽이 지대가 높다. 수비가 쉽고 공략이 어려운 지형이다. 삼남지방 동학농민군은 한양 진격을 위해 공주, 홍주 등지를 사전 공략키로 한다. 세성산은 이에 앞선 교두보격이 된 것이다. 당시 세성산은 전략상 가장 북쪽 전선에 해당한다. 이곳에는 기포 직전 이미 천안, 전의, 전동 등지 관아에서 빼앗은 무기와 식량이 대량 비축된다. 산 둘레 10km에는 깃발 수백기를 꽂아 위력을 과시한다.
조정이 동학농민군 토벌에 나선 것은 9월 중순이었다. 당시 일본군이 내세운 김홍집 친일내각은 토벌부대 양호순무영을 설치한다. 관군은 친군경리청, 친군장위, 친군통위영, 교도대 등 2414명이었다. 이들을 지휘한 인물이 선봉장 이규태와 후일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다는 이두황이다. 이들중 이두황이 이끄는 장위영군은 청주병영 사수명령을 받는다. 청주병영은 접주 손천민이 이끄는 공격에 다급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병영에 닿자마자 더 다급한 공주 충청감영 사수명령이 내려진다. 이두황은 재차 남진 전 해월 최시형이 머무는 보은 장내리 대도소를 노린다. 그러나 해월은 옥천 문바위로 피신한 뒤였다. 초막 400여 채만 불태운 관군은 말머리를 세성산으로 돌린다. 이 산에는 천안뿐만 아니라 인근 공주, 옥천, 영동, 예산 등지 동학농민군도 합세했다. 이에 그 수는 무려 4000여명에 이른다는 기록도 있다. 전봉준이 이끄는 남접 동학농민군은 한양 공격이 주목표였다. 이에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막고 함께 북진을 기다렸던 요충지 세성산을 관군은 사전 제압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 공주로 향했다가는 배후공격이 뻔했던 것이다.
이두황의 장위영군은 10월 21일 아침 일제히 세성산을 공격한다. 수적으로는 세성산 주둔 동학농민군이 서너 배 우위였다. 하지만 소총과 대포로 중무장하고 잘 훈련된 경군과는 전력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다. 군사들은 맞은편 먼저 산에서 지원사격을 가한다. 일부 군사들은 북쪽 절벽아래 매복한다. 나머지 군사들은 완만한 동남쪽을 뚫고 산위로 들어간다. 동학농민군은 낭떠러지 삼면을 방어벽으로 삼는다. 그러나 막강한 화력에 결국 수많은 사상자만 내고만다. 이들은 북동쪽 10km가량 떨어진 작성산으로 후퇴한다. 그러나 미리 매복해 있던 경군이 이들을 몰살시킨다. 이날 패배로 파악된 동학농민군의 피해는 전사 370여 명, 중경상 770명, 포로 17명이었다고 한다. 전투를 이끈 대접주 김복용 등 지도자 22명도 현장에서 처형당한다. 이두황은 세성산의 무기와 군량을 챙겨 충남감영 사수를 위해 공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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